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독일 기사단국 (문단 편집) === 쇠퇴와 해체 === ||[[파일:external/upload.wikimedia.org/552px-Teutonic_Order_1466.png]]|| 그러나 15세기 이후 기사단국은 쇠퇴하기 시작하였다. 동유럽에서는 폴란드 왕국과 [[리투아니아 대공국]]이 혼인을 통해 [[폴란드-리투아니아]] 동군연합[* [[동군연합]]일 뿐 아직 연방이 성립된 것은 아니다.]을 결성하였다. 이 인적 연합(Unia Personalna)의 구성 이유 중 하나가 [[튜튼 기사단]]을 견제하는 것이었으므로 독일 기사단국의 몰락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.[* 본격적으로 쇠퇴일로를 걷게 된 것은 [[타넨베르크 전투]](1410)의 패배 이후.] 실제로 폴란드-리투아니아의 결성은 독일 기사단국에게 크나큰 위협으로 다가왔고 결국 양국 사이에 전쟁이 불가피해졌다. 양국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전쟁 준비를 서둘렀다. 튜튼 기사단은 서유럽 기사단으로부터 원조를 받았고, 폴란드-리투아니아는 보헤미아와 모라비아, 타타르 군대까지 포섭하였다. 결국 [[1410년]] 튜튼 기사단과 폴란드-리투아니아 사이에서 타넨베르크 전투([[그룬발트 전투]])가 벌어졌다. 1410년 [[7월 15일]] 양국의 군대가 타넨베르크 (그룬발트)에서 모여 대격전을 펼쳤다. 이 전투에는 약 2만 명이 참가했다고 추정된다. 타넨베르크 전투는 기사단의 대패로 종결되었다. 한때 수도인 [[마리엔부르크]]까지 위협받았던 기사단국은 [[1411년]] 제1차 토룬 조약을 맺고 기사단국이 영유하고 있던 즈무치 지역을 할양했다.[* 그러나 즈무치 지역은 폴란드 왕국에게 영구적으로 할양되는 것이 아니라 [[브와디스와프 2세]] 서거 이후에는 다시 반환되기로 합의되었다. 토룬 조약에서 폴란드는 거액의 배상금을 기사단으로부터 받았으나, 그 대신 전쟁 중 폴란드가 점령한 여러 성들은 독일 기사단국에게 반환되었다. 즉 타넨베르크 전투는 명실상부한 폴란드-리투아니아 연합의 승리였지만 연합은 그 승리를 정치적으로 활용하지 못했다. 다만 이 전쟁의 결과 튜튼 기사단의 군사력이 확실히 와해되었다. - 정병권, '폴란드사 (세계각국사 23)', 1997, 64p] 이후에도 폴란드-리투아니아는 기사단을 여러번 공격했으며 결국 [[1454년]]~[[1466년]] 벌어진 13년 전쟁에서도 패배하여 제2차 토룬 조약을 체결했다. 조약의 결과 기사단은 왕령 프로이센이라고 불리는 [[서프로이센]] 지역과 동프로이센 서부 지역인 에름란트(Ermalnd)[* [[폴란드어]]: 바르미아(Warmia)]를 할양하였으며 이후 기사단장은 폴란드 국왕의 봉신이 되고 기사단국은 폴란드 왕국의 제후국으로 전락했다. 그러나 독일 기사단국은 끊임없이 폴란드로부터 독립을 시도했다. 이에 폴란드는 [[1519년]]부터 [[1521년]]까지 2년 동안 기사단국과 전쟁을 벌였다. 기사단에 대한 신성로마제국의 무관심 속에 폴란드에게 완패한 기사단은 결국 37대 기사단장인 [[알브레히트(프로이센)|알브레히트 폰 호엔촐레른]]이 신교로 개종하고 세속화했다. 1522년 뉘른베르크 신교도 회의와 [[비텐베르크]]에서의 [[마르틴 루터]]와의 만남이 계기였다. 1525년 4월 폴란드 국왕 [[지그문트 1세]]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폴란드의 제후국인 [[프로이센 공국]]을 수립했다. 이 시기 독일 기사단국 일대에도 한창 루터교회가 퍼져나가는 상황이었고, 이미 기사단원 중 상당수가 루터교회로 개종한 상태였다. 덕분에 기사단국의 세속화 조치는 주민들이나 기사단원들의 별다른 반발없이 순조롭게 이어졌으며 독일 기사단국은 해체되었다. 다만 독일 기사단국이라는 국가가 사라졌을 뿐, 그 모체인 [[튜튼 기사단]] 자체는 리보니아 지부와 독일 지부로 나뉘어 계속 살아 있었다. 리보니아 지부는 [[모스크바 대공국]]의 [[이반 4세]]에 의해 멸망당했고[* 정작 [[리보니아]] 영토는 [[폴란드-리투아니아]]와 [[스웨덴]], [[덴마크]]가 나누어가졌고 모스크바 대공국은 아무 영토를 얻지 못했다.], 독일 지부는 1808년까지 이어지다 나폴레옹에 의해 신성 로마 제국이 해체되면서 영지가 몰수된 관계로 잠시 해체되었다가 1834년 재건되어 21세기인 지금까지도 가톨릭 봉사단체로서 남아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